화가들의 스타일은 매우 다양하나 크게는 다작형,중작형,소작형일테고
중노동형, 반노동형, 비노동형등으로 구분짓는다고 할때
나는 노동면에서 다소 중노동형인 듯하다.
<초신타>처럼 일관된 스타일로 엄청난 다작에 감각을 중시하며 철학적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을테고
<앤서니 브라운>처럼 지독히도 치밀하게 노동집약적이고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하는 작가도 있다.
참으로 어찌 그리도 훌륭한 일벌레들이신지, 놀기도 잘 하셨는지 궁금하다.
예전엔 다작을 중시하는 문화였다면
지금은 월등한 단 몇편의 히트작으로도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세상에는 얼마나 '심하게 노동하고 평가받지 못하는' 억울한 작가들이 많을까.
문제는 늘 시장상황이 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데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미련한 작업은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고 있다.
왜 이렇게 복잡한 스토리와 중노동적 기법을 쓰며 시작했는지 나자신이 징글징글하다.
중간중간 의뢰받은 다른 작업들도 '나름의 수준껏' 잘 해나가야 한다.
이런 중노동의 댓가는 주로 수포로 돌아갈 때가 더 많지만
뽕나무를 갉아먹는 애벌레처럼 이것이 나의 우주이고 소명이고 희망이려니
오늘도 책상을 파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