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는 어른의 나이라고 일컬어지는 숫자를 지나고도 한참이다.
예전엔 어른이란 어떠한 일에도 호들갑을 떨지않고
아주 둔중한 표현력으로 일을 원만히 해결해 가는 큰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때론 그들의 어긋난 욕망이 주위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이해할수 없이 답답하고 역겨우며 그럼에도 기댈수 밖에 없는 사람들.
물론, 지금의 나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젊은날처럼 자신의 주관을 마구 발산하는 것이 더이상 마성의 매력이 아니며
대인관계에 능한 것이 사회적 능력의 일부인 고로
입을 아주 단순하고 무겁게 놀려야 한다는 것을 ..
그러므로 결코 짧지 않은 인생여정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문득 피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난해하며 불가능한 것인지를.
또한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그럴만한 가치에 관해서도 말이다.
그리하여 소통의 답답함이 곤란함까지 이를 경우 책을 쓰고 싶어지나 보다.
이해받고 싶은 욕구를 바탕으로 삶의 에피소드와 공상과 지표들을 엮어
누군가에게 전해질 편지를 쓰는 것이다.
경찰관이셨던 아버지는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열성적으로 글을 쓰고 계신다.
마치 생의 소재들을 쏟아붓고 있다고 할 정도로 다작을 하신다.
지금까지 보수우파적 성향의 다양한 책을 열권도 넘게 내셨다.
은퇴 후 이십년 가까이 오로지 글쓰기와 댄스에만 전념하시며
암환자임에도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계신,
누가 뭐래도 왕성한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작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심 못마땅하고도 부럽다.
젊은날 성실히 가족을 부양하였으므로 선한 아내의 봉양을 받는 그의 노년은 참으로 유복해 보인다.
작가란 말속의 비아냥거림,존경,이질감 ,경외,증오...
점점 작가란 말이 주는 양면성이 예전처럼 편하게 들리지 않는다.
생활인으로서 작가의 이름으로 살고 싶은 자들의 몸부림과
그 이름으로 살고 있는 자들의 고단함과 곤혹스러움이
무수히도 많은 술잔을 채우고 또 비우고 있는 것이다.
